📌 강박
대학생 때 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평소에 나를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을 찾는 것을 좋아했고 그럴 기회가 있으면 항상 시도해 보는 편이었다. 학교에 있는 학습지원센터에서 심리 상담을 운영했었는데, 우연히 심리 상담을 받아볼 기회가 생겨서 받게 되었다.
그때 여러 종류의 검사를 많이 했었다. MBTI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기억 안 나는 여러 검사를 진행했었는데, 그중에 기억나는 검사 하나가 ‘HTP 그림 검사’ 였다. HTP검사는 집(House)-나무(Tree)-사람(Person)의 앞 글자를 따서 HTP 검사이고, 내담자에게 각각의 그림을 그리게 하여, 내담자의 무의식을 분석하는 심리 검사이다.다른 그림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나무 그림을 그리고 분석하는 과정에서 내가 몰랐던 나의 강박에 대해 알게 되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때의 기억을 되짚어 보려고 한다.
상담 선생님이 A4 용지와 연필, 지우개를 주셨고 어떤 나무를 그릴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엄청나게 크고 우람한 나무를 그리고 싶었다. 보고만 있어도 에너지가 넘치고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듯한 그런 나무. 정말 오랜 시간을 그렸었다. 내가 상상했던 크고 우람한 나무는 땅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두꺼운 나무껍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런 요소들을 전부 표현하고 싶었다. 그리는데 거의 1시간 10~20 분을 넘겼을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그림을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상담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과 나 자신이 그리면서도 지쳤기 때문에 도중 그림 그리는 것을 포기하였다.
그렇게 상담 선생님이 내 그림에 대해 분석해 주셨다.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 분석해 주신 것은 기억이 잘 나진 않았지만, 내가 모르는 나의 강박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나무줄기는 자아를 뜻한다. 나의 나무줄기는 그림의 3분의 1을 차지하였고 나무껍질이 강조된 모습이었다. 꼼꼼하고 강조된 나무껍질은 불안과 강박적 성향을 나타낸다. 뿌리는 안정감과 관련 있다. 나의 나무 그림은 나무의 윗부분을 그릴 공간이 없을 정도로 뿌리가 강조되어 있었다. 뿌리의 강조는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상태라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림의 여러 가지 부분들과 나의 얘기를 듣고 상담 선생님이 나의 심리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요약하자면 나는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되고 싶은, 살고 싶은 미래의 이상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높기에 그런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놀다가도, 열심히 공부를 하면서도 늘 불안했었다. 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늘 생각해 왔다. 심리 검사를 받은 후, 그 당시에는 좀 편하게 생각해 볼까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성격 상 편하게 마음을 먹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고 지금도 그런 강박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내 강박을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난 매우 게으른 사람이다. 누구보다 집에 있는 것을 즐기며,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 어떤 활동보다 날 행복하게 한다. 일을 자주 미루며, 일을 쌓아 놓고 현실 도피로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게으른 성격을 가만두지 못하는 강박 덕분에 나는 늘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 행동한다. 나에게 스스로 조장이란 책임을 지게 하기도 하고, 스터디에 참여하면서 강제로 공부를 하게 만들며, 독서 모임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글 잘 쓰는 사람’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발전 지향적인 나를 만든 것은 나의 강박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강박을 삶을 살아가며 나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기에 나에게 강박은 내가 원하는 미래로 향하게 해주는 나침반이다.